경주라는 고립된 시공간 속 유년과 사춘기를 견디게 한 원고지, 장난감, 교복 등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.
나는 그 시간을 프레임 안에 포착된 한 장의 사진이 아닌, 얼음 속에 갇힌 ‘또 다른 나’라 부른다.
렌즈 표면에 투영되지 않고 사진 안에 차마 비쳐 보이지 않는 가라앉은 기억이자 존재의 실체다.
작업 <얼음 문명>은 이 은밀하고 잔혹한 기억을 물성의 변화로 승화시키는 일이다. 사각형의 얼음 덩어리는 완전한 고립과 통제를 형상화하며, 그 안에 봉인된 오브제들은 호흡과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다.
사진이라는 평면 매체가 지닌 한계를 넘어, 차갑고 불투명한 얼음의 질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의 결핍과 상흔을 비로소 감각하게 만든다.
얼음 아래 멈춰 선 물상들은 보이지 않는 기억의 초상이자, 언젠가 녹아내려 증발하고 흐르고야 말 삶의 통증에 대한 고요한 증언이다.